■ 김주열군사진

 

 

 

■ 김주열군 노래

 

“원통하게 죽었구나.
 억울하게 죽었구나.
 몸부림치는 삼일호는
 그 누구가 만들었나.
 마산시민 흥분되어
 총칼 앞에 싸울 때에.
 학도겨레 장하도다
 맺지 못할 김주열.
 무궁화꽃을 안고
 남원 땅에 잠들었네.”

 

■ 김주열군 묘비글

 

 이곳은 순결하고 고귀한 피를 4월 혁명의 제단에 뿌리고 한송이 민주의 꽃으로
피어난 김주열님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님은 신라 흥무왕 유신의 후예로서 아버지
김해 김공 재계(在桂)와 어머니 권찬주(權燦珠)의 4남매 중 둘째아들로 1944년
10월 7일 남원군 금지면 옹정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온후하고 영특한 성격이었던 님은 남다른 지용을 갖추고 있었으며
평소 문학을 사랑하여 문예창작의 꿈을 키웠고 교육자가 되어 후학을 기르고자
하는 뜻을 간직하고 금지중학교에서 향학열을 불태웠다. 님의 나이 열일곱살,
꽃다운 가슴에 청운의 꿈을 안고 마산상업고등학교에 진학한 것이 1960년 3월
당시 장기집권욕에 눈이 먼 자유당 정권이 국민을 우롱하며 3·15부정선거를 저질
렀으니 민주주의를 아끼고 정의로움을 사랑하는 국민들의 분노가 강물로 흘렀다.
독재정권 물러가라. 부정선거 다시 하라. 시위군중의 앞장에 선 님의 외침은
하늘을 찔렀고 순결한 피는 용광로처럼 끓어올랐다.
 슬퍼도다. 저들 독재의 총탄에 민주를 포효하던 민주의 입은 닫히고 타오르던
불꽃은 스러지고 말았도다. 마산 3·15의거에 앞장서다가 행방불명이 되었던
님의 주검이 한쪽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마산(馬山) 앞 바다에 떠 오른 것이
27일 만인 4월 12일이었다. 참혹하게 희생양이 된 님의 죽음은 온 부모의 가슴을
천만갈래로 찢어 놓았고 꺼지려던 민주의 봉화는 방방곡곡으로 번져나가
4·19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거룩하도다. 님의 죽음이여. 의롭도다. 님의 넋이여. 김주열님이 정의와 자유의
민주의 표상으로 산화한 지 어언 34년, 이제야 님의 숭고한 뜻을 기리면서 국민이
나라의 참 주인이 되기를 갈망하는 모든 이들의 뜻을 모아 여기에 비를 세우노라.
                                서기 1994년 4월 일
                               지은이 소설가 윤영근.
                               글쓴이 석담 조남균